달리기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 오세진
23.1.10. 시작
23.1.17. 03:00 즈음 읽기 끝.
한 마디만 하자면 몸보다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하는 나는 너무 좋았어.
달리기로 마음이 편안해지는게 좋은 사람들에게는 추천.
이건 책 이야기는 아니지만 달리기 이야기를 하자면.
달리기를 안 해보셨다면 100미터부터 천천히 일단 시작해보시라!
달리기가 힘들기만 하다면 조금 더 천천히 더 느긋하게 뛰어보길 추천.
달리기를 하고 있지만 거리를 늘리기 무섭다면 그냥 갑자기 한번 조금 거리를 늘려보길 추천. 단, 천천히 더 천천히 달리기.
(나도 그렇게 해볼 생각임. 속도는 나도 아직 무서운 영역이라 말을 못 하겠음)
밀리의 서재 서평에 자기 광고가 많다고 해서 안 읽고 있다가 달리기 책은 읽고 싶은데 딱히 읽을 책이 없어서 읽기 시작.
일단 난 모르겠는데. 광고? 자랑? 모르겠음. 만약에 자랑이라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건 자랑하고 자랑해도 얼마든지 된다고 생각함. 좋아하는 걸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좋아하는 걸로 얻은 걸 말하고 싶은 건 너무 너무 순수한거라고 생각함.
어쩌면 자랑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난 보이는데.
한 가지.
뭐든 그렇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취미도 열심히 하다보면.
좋아함보다 의무감이 더 커질 때가 있는데.
(잘 하고 싶고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더.)
그 의무감 때문에 작가님이 좋아함을 버거워 하지 않기를 바람.
의무감이 너무 커져서 좋아함보다 힘듦이라면 의무감이랑 연결되는 것은 잠깐이라도 고리를 끊기를 바람.
그 끊김으로 잃는 것이 적지는 않겠지만 휴식도 훈련이니까.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
작가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뭐랄까. 독백같다고 할까.
읽는 사람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기한테 더 하고 싶은 말이랄까.
내가 한번 해도 그걸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계속 그걸 하고 싶다는 다짐을 담은 독백이랄까.
일단 하자! 고고! 단, 마음(욕심)은 작게, 작게.
나는 할 수 있고, 못 해도 완전 괜찮아.
했으니까. 그게 중요한 거야. 하는 거.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는 대형 트럭 가득히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것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발췌.
달리기는 하면 된다는 걸 가르쳐주었습니다.
- 이선우(런앤런 대표,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힘들고 지칠 때, 마음정리가 필요할 때, 달리는 일이 이렇게 힐링이 될 줄 몰랐어요.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가파른 호흡이, 제 마음의 걱정덩어리들을 날려주더라고요. 마음의 충전이 필요할 때 운동화 신고 달려보세요.
- 김유선(아모레퍼시픽 책임)
나는 달린 후 마실 콜라에 대한 열정 하나로 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콜라는 숨차게 힘차게 달리며 땀을 쫙 빼고 마시는 콜라다.
런던마라톤 3회 우승에 빛나는 폴라 래드클리프(Paula Radcliffe)는 이제 갓 러닝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일단 나가서 달려보세요. 직접 해보면 재미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잖아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저 달리고 싶다면 출발하면 된다.
한 걸음, 첫 걸음은 힘들다. 하지만 한 걸음이 다음 걸음을 가능하게 하고 어느새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들어와 있는 나를 발견한다.
JUST GO! 머리가 생각에 빠지기 전에 실천하자.
사막레이스 전 장거리에 대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막상 저지르긴 했으나 그 대책 없음이 어이도 없고 걱정도 됐다.
숨이 차서 죽을 것 같고 다리가 무거워 들어올리기가 힘든 순간엔 ‘그냥 한 걸음만 더 달려보자’라는 말을 수없이 되뇐다. 다리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해도 그래도 한 걸음 정도는 더 갈 수 있지 않냐며 끊임없이 내 다리를 달랜다. 매 걸음이 고통일지라도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게 반복하다보면 못할 것 같던 1킬로미터는 더 달려낼 수 있다.
달리기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두 다리는 생각보다 끈기 있고 심장과 폐는 기대 이상으로 강하다는 믿음. 내가 즐겁게 잘 달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달린다.
무리되지 않게 가다 서다 하면 된다고 나를 설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스를 잡아주는 일명 ‘동반주’를 해주겠다고 했다.
‘동반주’는 쉬운 게 아니다. 숭고한 일이다. 그는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며 10킬로미터 마라톤 일정을 하나 보내왔다. 당연히 나는 그 날짜에 마침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댔다. 그랬더니 또 다른 날짜를 보내왔다. 나 역시 물러서지 않고 마침 그날 부모님과 약속이 있다고 했다. 거짓말을 하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달리기는 싫고, 내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권유하는 그의 말을 딱 잘라 거절하기도 힘들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요리조리 도망 다녔다. 그랬더니 또 한 번 다른 날짜를 보내왔다. 더는 그 마음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날짜를 잡았고 그렇게 첫 대회를 기다리던 중, 대회를 앞둔 며칠 전 심한 감기에 걸렸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온몸이 아팠다. 몸은 아팠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 와중에 ‘아, 안 뛰어도 되겠구나’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쁜 마음을 살포시 누르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도저히 달릴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님을 강하게 어필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함에 대한 죄송한 마음도 전했다.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 도저히 지금 뛸 수 없을 것 같아요”라는 말에 그는 “어, 세진아, 몸조리 잘하고. 그리고 걱정하지 마. 마라톤대회는 매주 있어”라며 마라톤 일정 8개를 한 번에 메시지로 보내오는 게 아닌가? 천천히 일정 살펴보고 이중에 하나 골라보라고 하는 말에 그야말로 뜨악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달리기를 ‘속도의 스포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길 위에서 즐겁기 위해 달릴 뿐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묘비명을 내 식으로 바꿔본다면 ‘나는 달리기 중 자주 걸었다. 하지만 멈추진 않았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첫 10킬로미터 기록은 1시간 30분. 달리기 좀 하는 사람들은 이 기록을 보면 동네 마실 다녀왔네요라고 할 그런 기록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가 정말 대견했다. 10킬로미터를 버틴 내 다리도 정말 고마웠고, 이렇게 쉬엄쉬엄 했음에도 생각보단 빠른 기록이었기에 다음이 기대됐다. 조금만 덜 쉬고 한 걸음만 더 달리면 1시간 20분 안에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잔잔한 기쁨과 긍정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내 인생에 풀코스는 절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살면서 백프로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42.195킬로미터를 달리게 되다니. 세상일은 이리도 알 수가 없다. 앞으로는 ‘절대’라는 말을 절대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절대’라는 말은 한 치 앞을 못 보는 인간의 어리석은 시각으로부터 나온 말임을 이제야 경험으로 알게 됐다.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막상 달려보니 그 시간 동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가지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뇌가 외부자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디폴트 모드가 된다고 한다. 이른바 달리기를 통한 명상효과를 경험한 것이다.
풀코스를 달리다보면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의 대 분출로 한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지며 기분이 좋아지는 ‘러너스 하이’ 상태에 도달한다더니 개뿔, 풀코스는 풀(full)로 힘들었다. 왜 나에게는 ‘러너스 하이’가 허락되지 않는 걸까.
응원단들이 나눠주는 콜라를 마시고 힘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콜라가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신비의 물약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내 콜라 사랑은 시작됐다. 평소에 탄산은 입에도 안 대는데 유독 달리기 한 후에는 자꾸만 콜라가 당긴다.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는 순간 돌덩이 뭉친 것처럼 순식간에 다리가 굳어버린다. 쥐가 내렸다. 움직일 수가 없어 그대로 인도에 주저앉았다.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데 경찰이 다가오더니 “쉬다가 다시 갈 수 있어요? 앰뷸런스 타실래요?”라고 묻는다. 앰뷸런스를 타는 순간 기록칩을 떼야 하고 결국 완주를 못하게 된다. 어떻게든 완주를 하고 싶었다. “아뇨! 저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일어서려는데 움직이지 않는 다리 때문에 다시 주저앉았다. 통증이 와서 부여잡고 있었더니 다시 “앰뷸런스 타실래요?”라고 묻는다. 갈 수 있다는데 왜 자꾸 앰뷸런스를 타라고 하는지……. 경찰에게 “저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데 그 상황이 너무 속상해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절실함을 느꼈는지 경찰은 주로를 향해 “여기 허벅지에 쥐가 나서 못 움직이는데 도와주실 분 계신가요?”라며 도움을 구했다.
그때 두 명의 선수가 다가오더니 어깨를 잡고 다리를 들어 스트레칭을 해주고 쥐가 풀어질 수 있도록 주물러줬다. 그러고는 포도당 캔디를 까서 내 입에 넣어주고 본인의 에너지젤까지 주며 힘내라고 격려를 한다. 자신의 기록도 중요했을 텐데 기꺼이 도움을 주신 두 선수에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신 반복했다. 따뜻한 마음 덕분에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고 다시 달릴 수 있었다. 붉은색 목동마라톤 유니폼을 입고 있던 이름 모를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다시금 마음 전하고 싶다.
트레일 러닝은 한 번의 경기에 여러 번 새로운 코스를 경험하게 된다. 마라톤은 땡볕에서 구어짐을 당하면서 끊임없는 아스팔트 위를 일정한 페이스로 계속 달려야 한다. 뛰다보면 그 길이 그 길 같을 때도 있다. 좀 지루하다.
난 무난한 코스라는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제대로 낚였다. 끝없는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바위를 타고 넘어야 하는 능선과 밧줄을 잡고 내려와야 하는 내리막까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코스였다. 유격훈련을 온 건가 싶은 착각에 빠졌다.
‘한계란 한 게 없는 사람들의 핑계’라는 말을 몸으로 경험한 일이다.
귀차니즘이 발동해 가기 싫어질 만큼 필수장비가 많았다. 트레일 러닝 조끼와 물통, 그리고 비상시 체온을 유지해줄 서바이벌 블랭킷, 일명 은박지. 거기에 우비, 환경보호를 위해 일회용 컵을 주지 않기에 물을 받아 마실 개인 컵도 챙겨야 했다.
아무튼 첫 장거리 트레일런 대회에서 깨달은 건 내 시야에 앞 선수가 보여도 같은 조건의 힘든 상황 속에서는 그가 멈춰 서지 않는 이상 따라잡기가 힘들다는 거였다. 욕심이 앞서 능력 이상의 빠른 페이스로 달린다면 잠시 추월은 가능하나 얼마 못 가 퍼질 게 분명하기에 그저 내가 낼 수 있는 속도로 부지런히 가는 수밖에 없다. 앞 사람이 멈춰 서길 기대하고 기다리고 끌어내리려 하기보다 꾸준히 한 발 한 발 쉬지 않고 걸으면 적어도 뒤에서 오는 선수에게 잡힐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더 빠르게 열심히 달려 나를 추월하는 선수가 있다면 존경의 박수를 치며 앞 선수의 발걸음을 응원했을 것이다.
운동은 자신을 위해 행하는 일이며 나를 건축하고 세우는 의미 있는 행위다. 나는 그 방법으로 달리기를 선택했다. 포디엄에 오르던 오르지 못하던 간에 완주하는 모든 사람이 챔피언이다!
나 자신을 개선하면 내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렇게 내 세상을 행복하게 물들이는 중인 듯하다.
“님, 면봉이세요?”
주위에서 걱정이 많다. 머리만 커 보인다며 살 너무 빼지 말라고 한다. 그게 내가 빼는 게 아니라 빠져 보이는 거라 설명해도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묻는다. 친한 친구들은 멸치 대가리 같다며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러너 아닌 자들이 모르고 하는 말에 성낼 필요 없지, 라며 나를 다독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친구들 말을 인정한다. 내가 봐도 좀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기에. 몸무게는 그대론데 군살이 빠지면서 달리기에 최적화된 몸이 되고 있다. 뭐 언뜻 보면 하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면봉 같기도 하다. 체중감량을 원하는 자들이여 달리기를 하자! 이것만큼 건강한 살 빼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 나쁜 날씨란 없다.
하늘이 맑던 흐리던 모두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풀코스나 트레일 러닝 대회 전날이면 의식처럼 먹는 음식이 바로 짜장면이다. 사실 그냥 맛있어서 먹는데 대회 핑계를 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짜장면 한 그릇을 설렘과 함께 비벼 먹는다.
카보로딩(Carbohydrate Loading)이라고 글리코겐 축적을 위해 탄수화물 비중을 높이는 식사법을 의미한다. 프로 선수의 경우는 일주일 전부터 글리코겐을 전부 소진하는 고강도의 운동 후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하다가 대회 삼일 전부터 탄수화물 양을 늘리며 체내에 최대한 많은 글리코겐을 저장하게 된다.
“긴장이 아닌 기분 좋은 설렘인 거예요.”
나의 첫 DNF다. 우리 멤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DNF는 ‘Do next finish’라고 했다. 참 좋은 말이다. 앞으로도 달리고 싶은 곳을 달릴 기회도 많기에 이는 끝이 아닌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다. 생각해보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멈춰 서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다.
잘할 수 있을까를 걱정할 시간에 일단 경험해보라. 생각지도 못한 잠재력을 발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모두 처음 살아보는 오늘을 살고 있다. 매 순간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놓이기도 한다. 그 순간 스스로의 힘을 믿어라. 페르시아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너 자신의 신화를 펼쳐라(Unfold your own myth)’라는 말처럼 당신의 신화는 이미 당신 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것을 계속 잠재워둘지 발휘할지는 온전히 당신의 선택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그 한 마디, 그 느낌 하나가 얼마나 나를 큰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용기를 주는지 모른다. 그렇게 언제나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아름다움은 본질적으로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속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물체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이것을 응시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라고도 했다.
장비와 내가 물아일체가 되어 한 몸으로 움직여지는 순간 장비빨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기본에 충실하자. 그런데 기본에 충실하자고 다짐하는 이 순간에도 유니크한 모자와 러닝용 양말에 눈길이 가는 건 왜일까. 결론은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뭐.
매번 훈련이 끝난 후 코치들이 아이싱 꼭 해줘야 한다며 당부한다. 초기엔 아이싱의 필요성을 잘 몰라서 찬물로 대충 몇 번 쓱쓱 뿌려주는 걸로 끝냈다. 그러다가 무릎이나 발목에서 열감이 계속 느껴지고 아파왔다. 그때 아이스팩을 대고 진정시켜주니 다음날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직접 느껴보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그 후부터 러닝 후 아이싱은 필수 코스가 됐다.
어쨌든 보여지기 위한 키는 성장이 멈춘 지 오래지만 내 몸과 마음의 근육은 달리기를 통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그래 이제와 성장, 가능성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닌가. 내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한 번 끝까지 가보자!
어렵게 어렵게 합류한 첫날 “안녕하세요, 오세진입니다”라는 간단한 인사를 하고 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정말 한 시간 내내 달리기만 했다. 웃음기 하나 없이 다들 진지하게 트랙을 돈다. 쉼 없는 트랙 뺑뺑이를 끝내고 훈련 종료 후 바로 해산이다. 정말 좋았다. 순수하게 운동을 위한 모임이라는 강한 느낌이 빡 든다. 모임에 대한 그 어떤 강요도 뒤풀이도 없는 깔끔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나에게 움직이지 않고 몸을 쓰지 않아서 아픈 거라고 했다. 숲길에 인적이 드물어지면 길이 사라지는 것처럼 사람의 몸도 사용하지 않다보니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이었다.
타인에게 ‘너는 거기까지야’라고 규정당하고 스스로에게도 ‘그게 가능할까’라고 외면당해 발현되지 못했던 가능성들이 벽을 깨고 나오는 기분이다. 결국, 한계란 스스로 지운 굴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달리기를 통해 매번 느낀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는 대형 트럭 가득히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것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수백 가지를 상쇄하는 단 하나의 주문은 JUST GO! 그냥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 기분을 움직이고 결심을 바로잡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가기까지가 힘들고 귀찮은 거지 막상 도착하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을 많이 봐왔다.
원 없이 달리고 나면 그간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달리면 숨은 차지만 마음에 쉼이 찾아온다. 숨이 찬 덕분에 숨 쉴 공간이 생긴다는 아이러니. 이것이 바로 내가 달리기를 사랑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를 왜 하느냐는 질문에 ‘그냥 좋아서요’라고 말한다. 좋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내 표정에서, 눈빛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그랬듯 우연히 만난 한 걸음이 당신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해줄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 전의 내 삶이 무채색이었던 건 어쩌면 내가 색칠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냥 좋아서 하고 있고 해보면 안다.
다른 이에게 갈 수도 있었을 기회가 운 좋게 나에게 왔는데 대충 준비해서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란 사람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진정성 있게 행하고 싶었다.
국적을 떠나 그 길을 달리는 선수들을 향해 목청껏 소리치며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 응원을 받으며 달리는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멈춰 서고 싶지도 않았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얼굴엔 뜨거운 눈물도 흘렀다. 이렇게 가슴 뛰게 달리고 있는 것이 좋았고 그 순간 그 공간에 내가 존재하는 것도 감사했다.
그날 나는 ‘나의 러닝은 나를 닮았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달렸다.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내 달리기가 나를 닮았다고 하는데 내가 이 달리기, 지금 이 경기를 포기하면 나를 포기하는 거야. 나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과 같다며 정신무장을 했다. 그냥 주어진 기회이기에 대충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 남다르다는 의미는 기존의 관습을 벗어던지고 제멋대로 산다는 것이 아닌 여러 벽에 부딪히고 깨지며 결국, 그럼에도 내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 내 삶을 나는 사랑한다. 내 마음을 충동질하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 순간에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행복하다.
“성공이란 당신이 하고 싶을 때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것이다”라는 앤서니 라빈스의 말대로라면 분명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는 “일이 즐거우면 이 세상은 낙원이요, 일이 괴로우면 세상은 지옥이다”라고 했다.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짐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평소에 훈련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빨리 달리기보다 조깅으로 무리 없이 꾸준히 훈련한다”고 말하는 미라의 대답에 그녀가 이야기하는 조깅은 과연 어느 정도의 빠르기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천천히 달린다는 그 조깅 페이스가 적어도 나에게 풀페이스(최대한 달릴 수 있는 빠르기)를 의미함을 자각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라는 웃는데 그 뒤에서 팀미라라이 멤버들과 나는 죽을상을 하고 따라가는 뭐 그런 형태였다. 원래의 계획은 팀미라라이가 출발은 앞에서 하되 출발과 동시에 속도를 늦춰서 완벽한 펀런(빠르게 달리기보다 즐기며 천천히 달림을 의미하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빨랐다. 그것도 상당히 빨랐다.
특히 그녀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메시지인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발견했음 해요. 당신은 강하고 할 수 있어요”는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겨울에는 그저 잠들어 있는 듯 보이지만 모든 생의 에너지를 농축시키고 집약시키는 과정이 소리 없이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된다.
매일 반복되는 패턴을 깨는 것, 늘 가던 카페가 아닌 조금 더 떨어진 곳에 간다거나 책 한 권 들고 가볍게 나서는 산책도 해당된다. 결국 떠남은 잘 돌아오기 위함이다.
와카야마에서 열리는 우메노사또 트레일 러닝을 가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라는 홍보 글 때문이었다. 그래 봄 맞으러 가자. 마음이 시키는 일임을 직감했고 빠르게 실천했다.
지인들은 달리기가 방사능 공포를 이겼다며 놀려댔다. 뭐, 변하니까 사람이지.
나이가 삼십 후반이 되어서야 나마비루(생맥주) 맛을 알게 된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새로운 모든 것에 조심스레 도전하는 그런 인간이다.
에너지 클럽.
예예예예~! 손을 마주 걸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인사를 나눈다. 헉! 이 당황스러운 인사법은 뭐지? 나도 모르게 뒷걸음친다. 보아하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주위를 스캔해보니 오늘 처음 에너지클럽에 온 사람들 대부분이 적잖이 놀란 듯하다. 여기 모인 기존 멤버들의 에너지가 흘러 넘쳐 감당이 안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한 마디로 이곳은 ‘당신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연구하는 모임’이고 이런 기운이 스며들고 물들어 더 번져나가기 위해 실천하고 배움을 이어가는 곳이다.
전주 에클(에너지클럽의 줄임말)에 갔을 때 강연 전에 한 중후한 남성과 같은 조에 앉게 됐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기가 도대체 뭐 하는 모임이냐고 물어왔다. 이분도 내가 처음 느꼈을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에너지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더불어 에너지클럽을 신재생에너지나 관련된 공부를 하는 학회 비슷한 느낌의 모임으로 알고 신청했다고 한다. 잘못 온 거 같다고 일어서려는 그 사람에게 이왕 오신 거 뭐 하는 모임인지 궁금하다면 경험해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과정이 끝난 세 시간 후 그는 그 어느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다음에 또 만나기를 기약하며 나갔다.
누구에게는 별 볼일 없는 목표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목표가 참 좋다. 속도 경쟁을 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자신의 걸음, 호흡에 맞춰 집중하며 즐기는 것의 가치가 느껴진다. 나 역시 런린이 시절 달리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저 함께 즐겁게 달렸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을 한 것뿐이다. 모든 노력은 함께 달린 그들 스스로 한 것이고 자신이 만든 성과다. 그저 지금처럼 건강하고 즐거운 러닝을 이어가준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삶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살아내야 할 신비다.’
숙제 같은 오늘을 살지라도 매 순간 자연과 삶이 만들어내는 신비를 느끼며 깨어 있길 바란다.
지나간 오늘은 결코 돌아오지 않으니까 대충 살면 대충의 내가 되겠지. 그러기에 한 번뿐인 이 순간에 잘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목표다.
그곳에 다녀온 사막 선배들의 입을 통하면 아타카마사막은 사막의 끝판왕이란다. 사막의 끝판왕! 이 말이 또 나를 잡아끈다. 왕은 깨라고 있는 거지! 나는 참 이상한 포인트에 꽂힌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꽂히면 가는 성격 덕분에 이렇게 잘 저지르며 살고 있다.
스스로 한계를 지우지 말자. 과연 몇 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을지, 얼마나 빠르게 뛸 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리 선 긋지 말고 몸이 나아가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저 즐겁게 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보다 아주 먼 곳까지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장담한다. 달리기나 인생이나 끝까지 가봐야 안다. 삶도 달리기도 피니시 직전까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달려보자. 어디까지 가게 될지 그 끝은 어디일지 함께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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