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
달리기가 인내와 의지의 영역이 아니라 재미와 쓸모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삶의 지혜와 새로운 나를 툭 던지기도 하더군요. 다시 시작한 달리기는 그렇게 스스로 진화했습니다.
이젠 사람들이 달리기를 그만두는 이유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달리기의 진화’를 알기 전에 멈춘 것입니다.
아내가 반대하는 취미생활은 백해무익합니다.
무릎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출장 간 상태였다.
이마에 땀이 난 순간 알 수 없는 쾌감이 나를 휘감았다.
수영을 할 때는 땀이 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땀은 달리기만의 매력이었다.
32km를 지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무릎이 고장 났고 330은 조금씩 멀어졌다. 다리는 펑크 난 타이어처럼 굴러가지 않았다.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솟구치는 통증을 억누르고 몇 번이나 달리기를 시도했다. 더해지는 건 고통일 뿐 걷는 속도는 전혀 더해지지 않았다. 타이어가 펑크 나면 교체라도 하겠지만 다리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는 없었다.
330은 완전히 떠났지만, 완주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한쪽 다리는 끌고 한쪽 다리는 끌려갔다. 부끄러웠지만 걸었고 더 부끄러울 수 없어 완주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최종 기록은 목표한 기록보다 44분이나 늦은 4시간 14분을 찍었다.
대회는 끝났지만 무식함과 과욕이 부른 참사는 현재진행형이었다. 마라톤이 끝났으니 부상도 함께 끝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나야. 나는 다르다고. 내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겠어.”
결과는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목표 달성 대신 인간은 모두 같은 몸뚱이를 가진 존재라는 교훈을 얻었다.
달리기만 하면 언제든 몸무게를 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야구와 달리 그다지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나가서 달리면 기분이 좋았지만, 막상 나가기 전까지는 의지의 몫이었다.
클럽 가입을 권한 지 보름쯤 지났을 때 그가 정기모임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가 없었다. “이럴 거면 내가 권했을 때 가입하든지….”
시간은 모든 섭섭함을 날렸다. 우리는 함께 달리는 시간을 쌓아가며 거친 호흡과 굵은 땀방울을 공유했다. 우리는 함께 달리면서 웃고, 달리기를 주제로 대화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때론 가볍게 때론 격하게 서로를 격려하며 선의의 경쟁이라는 씨앗을 마구마구 뿌렸다. 누구보다 까칠하던 그는 세상에서 가장 살가운 사람이 됐다. 달리기 친구가 된 그는 ‘홍시기’다.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라 미리 알려둔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여자는 프러포즈하는 남자에게 승낙 대신 웃음을 주는 여자라고 생각한다.
동네 형에서 달리기 친구가 된 올레는 요즘 PD 생활을 청산하고 달리기 유튜브 〈마라닉TV〉를 개설했다. 예전부터 꿈꾸던 본인만의 진짜 영상을 만들고 있다.
무엇이든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함께 달릴 친구가 있다면 누구라도 더 멀리 더 자주 그리고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세계적인 작가가 러너라는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루키의 책 제목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며칠 뒤 그 책을 단번에 읽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달에 300km를 뛰어본 적이 없는데 하루키는 수시로 그렇게 달렸다. 그는 예상을 뛰어넘는 대단한 러너였다.
달리기는 사랑과 달리 뜨겁지도 않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운동은 즐기기 위한 놀이에서 시작했지만 달리기는 잡거나 잡히지 않기 위한 생존에서 시작했다.
흔들다리 효과.
안정된 다리보다 흔들리는 다리에서 만난 이성에게 더 끌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흔들리는 다리 위라서 심장이 뛰는 건데 뇌는 이성 때문에 설렌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달리기로 생기는 ‘흔들다리 효과’는 여행을 더 사랑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걱정은 미리 할 필요가 없었다. 부딪히면 저절로 해결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첫 구절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모든 조건이 맞아야 하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그 이유로 불행하다는 뜻이다.
여행하다 보면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 같은 신비한 날을 만날 때가 있다. 여행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기록과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 모든 추억은 돛단배처럼 아스라이 사라진다.
호수가 품은 모든 장면은 분명 사랑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뿜어낼 수 있을까?
금요일은 원래 발걸음이 가볍지만, 그날은 하체의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흡사 〈고스트 바스터즈〉에 등장하는 유령이 된 느낌이었다.
여행지에서 달리다 보면 멈추고 싶은 순간이 있다. 숨이 차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을 더 느끼고 싶어서다.
새삼 고마워 홍시기를 바라보며 웃었더니 그도 웃으며 물었다.
“왜?
“좋아서요.”
제주에서 마시는 한라산은 지극히 색다르다.
여전히 다리가 불편했다. 아내가 물었다. “그거 또 할 거야?”
“어, 해야지” 대답하는 데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달리면 급격히 친해진다. 굵은 호흡을 쏟으며 함께 달리면 마음의 벽이 얼음 녹듯 사라진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전적으로 나의 경험이다. 나는 이것을 달리기가 만드는 작은 기적이라 생각한다. 작은 기적은 천천히 달릴 때만 누릴 수 있다. 빨리 달릴 때는 나에게 집중하니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없다.
어느 여성 러너가 눈물을 흘리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저 좀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같은 러너로서 그녀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돼 안아주었다.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말했다. “고마워요, 다시 끝까지 달릴 거예요.”
사람이 힘겨워할 때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어루만져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몇 년 전 꽤 괜찮은 선물을 알게 됐다. 어느 여행지에 갔더니 느린 우체통이 있었다.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송되는 방식이었다. 호기심으로 엽서를 써 우체통에 넣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1년 뒤 엽서가 왔다. 엽서가 특별히 예쁘지 않았는데도 대단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때부터 엽서를 특별한 선물로 정했다.
그때 열정적인 근육 청년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무중력 상태로 달렸다. 달리기에 몰입해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달리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은 혼자 달리면 지루하고 심심하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 혼자 있는 시간이 무작정 외롭지만은 않은 인생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와 함께 달리고 싶은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의 문제는 함께 달릴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다.
팍팍한 살림살이로 매생잇국을 못 먹어봤다고 지원서에 썼거든요….”
그 일화를 본 순간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는 구본형 작가의 인품에 탄복했다. 제자들은 그를 말과 글이 일치한 사람이라고 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천재는 나면서부터 알고 수재는 배워서 알게 되지만, 나처럼 보통 사람은 경험해서 알게 된다. 좀 늦을 수 있지만, 결과는 같다. 긴 인생을 봤을 때 조금 빠르고 늦는 건 어쩌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용에 나온 이 문구조차 나는 경험으로 알게 됐다.
나의 다짐은 이렇게 변화무쌍해서 때론 바위 같고 때론 깃털 같다.
항상 최선을 다해 달릴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최선을 다해 달리겠다고.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러너다운 달리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달려내는 것이다. 기록은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그가 만약 똥을 싸면서 완주하지 않고 포기했다면 스웨덴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그는 결국 최고가 된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을 향한 열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금지된 사랑도 그렇지 않던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보다 할 수 없는 사람을 배려할 때 세상의 온도는 사람의 온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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