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달리기가 주는 황홀함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운 좋은 사람들인지.
달리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나이였던 우리는 어떻게, 왜 달리는지 모르고 달렸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이유는 없었다. 코치가 훈련을 통해 이끌었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이끈 건 타고난 욕망이었다. 보상과 결과는 간접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은 채로 미래의 삶까지 멀리 이어질 터였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자. 큰까마귀와 검은머리솔새는 그날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이 산을 달린 이유와 같은 이유로 그러는 것이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런다는 말이다. 그게 전부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화가 까마귀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었을까? 바로,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엔도르핀과 행위를 연결 지어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행위는 궁극적인 보상을 생각하지 않는 그 자체의 즐거움을 위한 게 된다.
사람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언제나 달리기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단계는 일단 문밖을 나서는 것이며 동시에 그건 모두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달리기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문을 열고 나가 어떤 길이든 일단 올라서는 것이지만, 사실 달리기는 경제적 지위, 인종, 성별, 정치적 연관성 같은 성향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야외 스포츠다. 경기장도, 구장도, 동호회도 필요 없다. 심지어 신발을 신지 않아도 좋다. 맨발로 기록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사는 곳이 어디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모든 사람이 환영받을 뿐 아니라 뇌에서 더 많은 뉴런을 생산하고, 속도와 지구력을 위해 근육이 강화되고, 잠재적으로 수명이 더 길어지는 것을 포함해 건강한 몸으로 가는 동등한 발판 위에 서서 시작하는 운동이 달리기다. 달리기에는 타인의 성공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으므로 4분 달리기와 두 시간짜리 마라톤, 어린 소녀와 80세 할머니의 뜀박질이 모두 위대한 성취가 되어 노력을 인정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회적 활동이 된다. 이것은 어떤 게 성취될 수 있는지를 보는 우수함의 아름다움이며, 이는 곧 영감이 되어 몸이 아니더라도 영혼으로 공감하고 동참하는 현실로 자리 잡는다. 올림픽 같은 최고의 대회에서는 우리를 대신해 출전한 선수를 통해 영광스러움을 함께 누리고 즉각 참여하게 해서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하나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달리기는 소중하다.
생물학자이며 세계 기록을 세운 달리기 선수의 80세 되던 날의 이야기
좋아하는 걸 제대로 열심히 즐긴 인생을 읽을 수 있다.
생명과 수명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생물학적 신비와 달리기를 연결시킬 수 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다.
자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 발췌
나는 사소한 사건이 꾸준히 쌓여 마침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연의 운영 방식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여전히 가야 할 길과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인생이란 하나의 여정이며 아직 가지 않은 길을 너무 앞서서 일일이 계획하다 보면 오히려 막다른 길에 도달하거나 좌절하기 쉽다는 사실을 배웠다. 돌이켜 보면 처참하기 그지없던 상황이 예상치 못한 절호의 기회로 마법처럼 연결되기도 했다. 물론 피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시간이 우리에게 하는 일은 한 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적응해야 한다. 이 사실은 달리기에서 유독 두드러지고 인간의 생물학적 의미와 메커니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살다 보면 포기해야 할 것도,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도 있다. 그게 무엇이며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대개 움직임이 활발한 유기체일수록 수명이 짧기 때문에 장수 생물 목록의 꼭대기에는 나무가 올라간다. 캘리포니아에 서식하는 브리슬콘소나무 므두셀라는 수령이 4850년이며, 1만 3000년 된 참나무처럼 더 나이 든 나무도 있다. 그러나 현재 내가 사는 숲에 있는 나무는 대부분 수령이 1~2년도 채 못 되고, 평균을 내면 종의 평균 수명은 일 년 미만이 되고 만다. 수십만 그루의 어린나무 중에서 운 좋은 딱 한 그루만 햇빛을 받아 묘목 단계 이후까지 살아남기 때문이다. 어미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에서도 용케 빛에 도달하고 나면 수명은 엄청나게 길어진다.
내 경우에 달리기가 삶의 질을 높여주긴 했어도 노화를 막지는 못했다. 달리기는 내 삶에 몇 해를 보탰다기보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삶을 보태주었다.
인구의 3퍼센트가 계절성 정서장애를 겪는데 해마다 거의 같은 시점에 시작해 같은 시기에 끝난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한동안 온종일 꼼짝하지 않고 잠만 자면 나을 것 같지만, 겨울철 우울증의 공식적인 치료법은 행동이 아닌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빛에 노출되는 시간, 즉 명기明期를 늘리는 것이다.
사고로 손가락이나 손이 잘려도 빨리 의사에게 가져가면 원래대로 붙일 수 있다. 그러나 내부의 미세한 손상은 외과적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하고 자체적인 치유 능력으로만 재생시킬 수 있다. 늙는다는 건 세포 차원에서 상처가 서서히 쌓여 우리가 노화라고 일컫는 신체 저하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성체는 종마다 사전에 결정된 시간까지 아주 천천히 죽어간다.
약간의 스트레스 요인은 노화 속도를 낮추고 수명을 늘린다는 증거가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이 축적되었다. 여기서 스트레스란 가벼운 조사照射, 고중력, 추위, 열, 음식 제한, 운동을 포함해 넓은 범위를 일컫는다. 수명을 줄이는 스트레스는 회복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압박 요인이 장시간 높게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공급과잉에 해당하는 과식은 생장 속도를 높여 퇴화의 시점을 앞당기고 수명을 단축한다.
60대에 다시 한번 무릎이 말썽을 일으켰는데, 엑스레이 사진을 확인한 의사가 내 거창한 울트라 마라톤 경력을 듣더니 이제는 무릎이 더 닳지 않게 수영 같은 운동으로 바꾸라고 했다. 그 바람에 몇 개월이나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 그게 20년 전 일이다. 이후 나는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환자분 슬개골을 벗겨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겠습니다”라는 의사의 답변을 듣고도 경기에 나가 기록을 세웠다. 80세 기념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기 전 검진을 받으려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내 심장소리를 듣고, 한 번 더 듣더니 “어르신 심장은 열여섯 살짜리 운동선수 심장 같네요”라고 말했다. 무릎 상태도 괜찮았다. 평생 뛰어본 적이라고는 없는 내 또래의 친구들은 진작 무릎과 고관절 수술을 받았지만 그저 자기가 운이 아주 나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쓰지 않으면 몸이 녹슬지도 모르지만 세상에는 생전 달려본 적 없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엄청난 거리를 달리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사람들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늙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저 속도가 다를 뿐이다. 그렇긴 해도 나는 분자 수준의 경미한 상처일 때 치유되는 현상이 도마뱀의 꼬리가 다시 자라고 봄이면 나뭇잎이 새로 돋는 것처럼 회춘에 가까운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란 내가 고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죽음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즐겁게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리 몸에는 상처를 치료할 때 원래대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보수 메커니즘이 있다. 몸이 회복되고 다시 정상이 되는 과정에서 경미한 상처가 자극이 되어 몸을 전보다 더 높은 단계로 만드는 역노화 과정이 일어날 수 있다. 반면 전에 일어난 상처가 낫기도 전에 동일한 스트레스를 반복해서 받으면 상처가 악화되면서 생리적으로 노화와 비슷한 붕괴 주기가 계속된다.
자연선택은 개체가 성숙기에 도달하고 번식을 계속하는 한 젊음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해왔다.
여성의 직접적인 번식 활동은 유전자의 기여가 끝나는 폐경기에 마무리된다. 만약 인간 여성에게 연어나 장어의 생리적 수리 메커니즘이 장착되었다면 폐경기에 이르렀을 때 타이머가 꺼지면서 죽겠지만 인체의 타이머는 그 시점에도 꺼지지 않는다.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제 손주를 보살핀 사람들은 그러지 않은 사람들보다 유전적 가계를 더 오래 존속시켰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성은 여성보다 수십 년은 더 오래 직접적으로 유전적 기여를 증진할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씨를 뿌릴 수 있다는 말이다. 여성의 폐경기에 해당하는 연령 이후에도 오래도록 살아 있는 남성은 진화적 차원에서 생존력과 미래에 직접적인 유전적 투자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다. 그 결과 인체의 생체시계는 미래 수익에 좋은 투자인 신체 수리 메커니즘을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하게 되었다.
그 무분별한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결정이었지만 이를 통해 감정은 이성을 누를 정도로 강하다는 게 증명되었다. 다행히 그 감정은 훗날 달리기에서 긍정적으로 활용되었다.
언젠가는 한 나무에 관한 책을 쓰리라는 비밀스러운 생각을 키웠다. 이미 마음에 둔 나무도 있었다. 아주 오래된 거대한 솔송나무인데, 커다란 줄기의 절반 높이에 도가머리딱따구리가 파낸 구멍이 벌이 지내기에 적합해, 가을이면 벌들이 미역취가 핀 무성한 들판까지 꾸준히 줄을 지어 들락날락했다. 그 나무는 겨울이면 딱따구리가 파낸 구멍에 왕개미가 집을 짓고 사는 마법의 보물 상자였다. 애벌레와 진딧물이 이 나무의 잎을 먹고 살았고 딱정벌레 유충은 나무의 죽은 부위에 구멍을 뚫었다. 큰솜털딱따구리는 딱정벌레 굼벵이를 잡고 솔잣새는 씨앗을 먹으러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내가 계속 농장에 살았다면 매달 몇 주는 이 나무에서 보내며 하나도 빠짐없이 살핀 끝에 책을 썼을 것이다. 그러면 평생의 역작이나 유산이 되었겠지 싶다. 그렇다. 나는 그 나무의 이야기, 한 나무 안에 있는 군집 전체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시간이 가하는 많은 제약은 다른 길을 택하거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방식으로 벗어날 수 있다.
세상에 바로 눈앞에서 빼앗긴 것보다 더 소중하고 간절한 건 없었다. 학업에 매진하고 교내 아르바이트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달리기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코치가 말한 케냐 사람을 따라한답시고 맨발로 뛰어보았다. 날이 저물기 전까지는 모든 게 괜찮았지만 너무 멀리까지 달린 바람에 숙소였던 작은 텐트까지 돌아가려면 한참을 가야 했다. 사자, 코끼리, 코뿔소, 아프리카들소가 나타날까 두려웠지만 그저 달리는 수밖에 없었고 결국 발바닥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도착해 2주 동안 걷지 못했다.
많은 곤충이 비행 전에 몸을 떨어서 체온을 높이고 활동 준비를 하지만 워낙 몸이 작기 때문에 빨리 열을 잃고 비행 중에 몸이 식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레카의 순간을 경험하고 연구에 돌파구가 생기면서 통증은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바로 멈췄다.
추위에 민감한 점, 털이 없는 몸, 두껍고 부스스한 머리카락, 특히 땀을 다량으로 흘리는 것과 같은 인간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달리도록 태어났고 뜨거운 기후에서 기원한 게 분명하다.
달리기가 주는 황홀함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운 좋은 사람들인지. 모두 참 대단했지. 긴 시간 동안 불을 지펴준 자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네. 영원히 소중한 나의 벗 베른트, 최후의 순간까지 달릴 위대한 주자.
이런 자기중심적이고 비합리적 발상을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랬다가는 동기부여의 힘이 사라질 테니 이 생각은 영원히 비밀에 부쳐져야 했다.
새와 돌고래는 한쪽 뇌에서 다른 쪽 뇌로 옮겨가며 잠을 잔다. 그래서 돌고래의 경우 자는 동안에도 뇌의 절반은 깨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바다를 가르며 계속해서 이동할 수 있다.
나방 번데기의 운동과 비행을 보며 고등학교 시절의 크로스컨트리 선수들이 생각났다. 달리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나이였던 우리는 어떻게, 왜 달리는지 모르고 달렸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이유는 없었다. 코치가 훈련을 통해 이끌었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이끈 건 타고난 욕망이었다. 보상과 결과는 간접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은 채로 미래의 삶까지 멀리 이어질 터였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마음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고 이를 믿기 때문에 크게 오도될 수 있다. 그 마음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과 일치하며 큰 악형향을 끼칠 만큼 강력하고도 적절한 거짓을 믿어버린다. 진실을 만들어내는 것에 의심을 갖지 않으면 평화도 진보도 있을 수 없다.
옛일을 되돌아보며 그 나이에 내가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별거 아닌 증거에도 얼마나 쉽게 움직였는지를 생각하면 놀랍다. 커질 수도 있는 일 앞에서 결과를 고민하거나 장단점을 비교하지 않은 채 그저 털끝 하나 건드렸다는 이유로 비이성적인 반응을 하는 건 위험하다. 당시에는 완벽하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에 와서 보면 그런 식으로 이목을 끈 행동들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겨야 했다. 아니, 적어도 경치를 감상하면서 즐기고 있다고 자신을 세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첫 번째 트레일 러닝을 통해 나는 새로운 시대를 경험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힘들면 걷기도 했지만 걸음을 멈춰도 그만두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후반부로 갈수록 비틀대고 휘청거리며 달렸고 계속해서 추월당했다. 나를 지나치는 자들은 “잘하고 계세요!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내 유일한 목표는 어떻게든 끝내는 것이었다.
마침내 결승선이 있는 산자락이 보였다. 최선을 다한다면 거기까지는 갈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다분히 고의로 만들어진) 착시였다. 산자락을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하는 5킬로미터짜리 곡선 구간이 하나 더 남아 있었고 그것까지 마치고 나서야 결승선에 도착했다. 도착지가 낙원처럼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다. 목적지를 앞에 두고 마지막 100미터를 어찌어찌 달린 끝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경주가 끝난 뒤 양쪽 무릎이 뻐근하고 아파서 몇 시간은 걷지를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다시는 하지 말자. 그럼에도 완주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경기를 끝냈다는 사실 자체가 피로와 통증을 상쇄시켰고 너무나 다행히도 내 무릎은 다음 날 완벽하게 멀쩡해졌다.
첫 트레일 러닝을 통해 주, 국가, 세계 타이틀을 놓고 뛰던 달리기처럼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달리기를 경험했다. 장거리 달리기는 자선단체의 지원(경기 참가비로 지원된 후원), 자연 감상(자연환경에서 뛴다는 점에서), 건강(자신의 목표를 직접 정할 수 있다), 통합과 관용(연령, 성별, 국적,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을 포괄하는 차원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과의 조화와 연대, 선행,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 인간으로서의 겸손을 지지하고 촉구한다. 우리가 모든 생명체와 함께하는 공생의 일부라는 점은 그 어떤 생물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환경에서 모든 건 하잘것없는 존재가 아니다.
큰까마귀는 특별히 설계된 인간의 뒷다리 대신 특별히 설계된 앞다리를 사용해 머리 위로 높이 날아오른다. 산비탈에서 급강하하고 동료를 벗 삼아 날갯짓으로 바람을 타며 인간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요란한 소리로 서로에게 고함을 친다. 북아메리카대륙 전역의 산악 지대에 사는 검은머리솔새Dendroica striata는 함께 모여 3일짜리 2400킬로미터 경로를 멈추지 않고 죽기 살기로 날아 동쪽 해안으로 내려간 뒤, 멕시코만을 건너 남아메리카로 가는 전통적인 비행을 시작한다. 그중 다수가 대륙을 가로질러 알래스카 북쪽에서 동부 해안으로 이동한다. 봄이 되면 또 다른 경로로 플로리다를 경유해 알래스카로 돌아가거나 뉴잉글랜드 북부 산꼭대기에 있는 가문비나무 집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검은머리솔새가 겨울을 피해 이동했다가 다시 봄에 둥지로 오기 위해 반대로 돌아오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자. 큰까마귀와 검은머리솔새는 그날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이 산을 달린 이유와 같은 이유로 그러는 것이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런다는 말이다. 그게 전부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화가 까마귀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었을까? 바로,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엔도르핀과 행위를 연결 지어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행위는 궁극적인 보상을 생각하지 않는 그 자체의 즐거움을 위한 게 된다. 이 새들, 적어도 그해에 태어난 새끼는 자신이 어디로, 어떻게, 왜 가는지를 자각하지 못한다. 그 궁금증을 어른에게 물을 수 있는 언어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큰까마귀는 공기를 가르며 화살처럼 곤두박질치고 검은머리솔새는 바람에 맞서는 대신 바람을 타고 날고 싶어 한다. 우리가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내달리듯 바람의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는 피터 리겔이 《울트라 러닝》 에 <노화와 둔화>라는 제목으로 실은 그래프가 있다. 80킬로미터 경주에서 1.6킬로미터를 가는 데 걸린 시간(분 단위)을 연령에 대한 함수로 나타낸 것이다. 이 그래프를 보면 80킬로미터 달리기에서 생체시계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상한 대로 나이의 놀라운 효과다. 10세에서 80세까지는 느림에서 빠름으로, 이후부터는 다시 느림으로 가는 알파벳 U 자 모양의 곡선이 그려진다. 가장 어린 10세 완주자의 최고 기록은 1.6킬로미터당 9분이고, 마지막인 80세에서는 1.6킬로미터당 12분이다. 그 사이에서는 곡선의 가장 아래 지점이 연령대를 통틀어 세계 최고 기록인 5분인데, 28세 주자의 기록이다. 그래프의 곡선은 매끄럽게 연결되고 전 연령에서 맨 밑에 있는 시간, 즉 가장 빠른 기록은 나이가 적은 사람에서 많은 사람 순으로 다음과 같이 이름이 적혀 있다.
브레이넌(10세), 코르테스(15세), 코르테스(20세), 클레커(28세), 키리크(34세), 하인리히(41세), 코빗(50세), 라텔(58세), 카사디(67세), 모스토우(78세). 코르테스를 제외하고 어느 나이대에서도 동일 인물이 연속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20세 이후에는 최고 성적을 낸 사람이 항상 다른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기록 달성은 젊어서든 나이가 들어서든 평생 한 번의 짧은 시기에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기록은 젊을 때 에너지를 비축하느라 세우지 못하다가 나이가 들어 제 나이대의 기록에 도전하는 사람보다 빠를 수는 없을 것이다. 저 이름과 기록은 언젠가 분명 바뀔 테지만 그 차이는 몇 초에 불과할 것이며 그래프의 전체적인 모양에 영향을 주지도 않을 것이다. 엘리트 범주에 있는 30~50대 남성의 경우, 80킬로미터 기록 시간이 일 년에 2~3분씩 느려지고 이후부터는 둔화 속도가 빨라진다.
달리기에 참여한다는 건 생각이 비슷한 사회집단을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호회에 들어갈 때 내야 하는 회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걸 알고 있다. 동시에 노력이 많이 들수록 보상도 크고 유대도 단단해진다는 것을 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분투하며 머리 위에서는 큰까마귀가 울고 저쪽에서는 청설모가 재잘대는 소리를 듣지만, 이내 찾아오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결승선 너머의 약속된 보상과 만족이라는 천국을 기다리는 내내 서로를 격려한다. 타인의 행복은 나의 희생이 아닌 함께 공유하는 즐거움이다.
1897년 보스턴 마라톤 완주자는 15명이었으며 2015년에는 3만 231명으로 2000배 이상 증가했다. 뉴욕 마라톤 완주자는 1970년에 55명에서 2016년에 5만 1000명으로 늘었다. 오늘날 보스턴 마라톤의 관중은 50만 명에 육박한다. 1970년대 거리에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 조깅하는 이들은 풍경의 일부이며 달리기 동호회는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달리기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문을 열고 나가 어떤 길이든 일단 올라서는 것이지만, 사실 달리기는 경제적 지위, 인종, 성별, 정치적 연관성 같은 성향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야외 스포츠다. 경기장도, 구장도, 동호회도 필요 없다. 심지어 신발을 신지 않아도 좋다. 맨발로 기록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사는 곳이 어디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모든 사람이 환영받을 뿐 아니라 뇌에서 더 많은 뉴런을 생산하고, 속도와 지구력을 위해 근육이 강화되고, 잠재적으로 수명이 더 길어지는 것을 포함해 건강한 몸으로 가는 동등한 발판 위에 서서 시작하는 운동이 달리기다. 달리기에는 타인의 성공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으므로 4분 달리기와 두 시간짜리 마라톤, 어린 소녀와 80세 할머니의 뜀박질이 모두 위대한 성취가 되어 노력을 인정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회적 활동이 된다. 이것은 어떤 게 성취될 수 있는지를 보는 우수함의 아름다움이며, 이는 곧 영감이 되어 몸이 아니더라도 영혼으로 공감하고 동참하는 현실로 자리 잡는다. 올림픽 같은 최고의 대회에서는 우리를 대신해 출전한 선수를 통해 영광스러움을 함께 누리고 즉각 참여하게 해서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하나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달리기는 소중하다.
사람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언제나 달리기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단계는 일단 문밖을 나서는 것이며 동시에 그건 모두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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